지구가 1.5도 더 더워지기 전에

|
  • 오늘날 지구상의 거의 모든 생명체들과 인간은 궁극적으로 20억 년 전에 출현한 때 이른 광합성 미생물들의 자손이다. 그들은 쇠퇴하는 동안 우리가 번성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들었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산업화된 호흡이 다시 대기를 변화시키면서 다른 종들이 번성하는 세상을 만들 수 있을지 몰라도, 아마 우리는 쇠퇴할 것이다. 생명체는 이 행성의 무대 위에서 그저 수동적인 참여자가 아니다. 생명체는 하늘의 색깔을 바꾸거나 다른 생명체들을 죽일 수 있다. 하지만 텅 빈 무대에서는 할 이야기가 없다. <창백한 주황색="" 점pale="" Blue="" Dot=""> - 팀 딘
  • 망가진 환경으로 인해 인간이 겪어야 하는 정신적 비용은 우리의 집단의식에 조금씩 침투하고 있다. 폭염으로 농사를 망쳐 막막해진 농부들이 자살하는 사례가 속출하고, 미국에서는 대형 화재나 폭풍으로 삶의 터전을 잃은 재해민들이 정신건강 문제를 호소한다. 2017년 미국심리학회는 ‘환경 불안eco-anxiety’을 의학적으로 유효한 진단명으로 인정했다. 이 모든 현상은 범지구적 규모의 계절성 우울증, 일종의 애도라 할 수 있다. <영영 오지="" 않을="" 찬란한="" 여름=""> - 마리나 벤저민
  • 멸종은 매머드와 도도새에게는 안 된 일이었지만, 인간이 그것을 ‘인정’한다는 것은 훨씬 더 끔찍한 일이었다. 멸종이라는 개념은 인간이 다른 동물보다 특별하다는 우월감을 무너뜨리기 때문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멸종은 이 세계가 ‘마땅히’ 그래야 하는 상태로 존재한다는 믿음, 따라서 우리 존재에 목적과 뜻이 있다는 안도감마저 무너뜨린다. 훗날 사람들은 이 안도감을 ‘물웅덩이 사고puddle thinking’라고 이름을 붙였다. <멸종을 받아들이기="" 힘든="" 이유=""> - 패브릭 스톡스
  • 물웅덩이처럼 우리도 아늑한 구덩이에 느긋하게 들어앉아, 이 지구가 우리를 살게 하고 번영하게 하니 지구의 목적이 바로 그것이며 앞으로도 계속 그러하리라고 속 편하게 믿어버리는 것이다. (…) 하지만 물리의 법칙은 우리의 죽음과 상관없이 계속 작동한다. <멸종을 받아들이기="" 힘든="" 이유=""> - 패브릭 스톡스
  • 지금 인류가 저지르는 문제는 변화를 훨씬 빠르게 진행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 사람들은 지구가 오랜 시간에 걸쳐 어마어마한 변화를 겪어왔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지난 100만 년 동안 지구에는 빙하기와 간빙기가 있어 빙하시대가 시작되었다가 끝이 났으며, 극지방의 빙원은 점점 크기가 커지다가 작아지고 있다. 그러한 변화는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그 변화가 100년이 아니라 10만 년에 걸쳐 일어난 일이기에 자연스러운 것이다. <온난화? 속도가 문제다> - 찰리 라인위버
  • 속도는 전체 생물계에 매우 중요하다. 만약 변화가 서서히 진행된다면, 생물계는 그 상황에 적응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변화가 빠르게 일어나면, 그 속도에 뒤처지지 않을 만큼 빨리 적응하지 못한다. (…) 모든 것은 변화의 속도에 달려 있지, 변화의 양에 달려 있다고 보기 어렵다. <온난화? 속도가 문제다> - 찰리 라인위버
  • 우리는 주변 환경의 황폐와 파괴에 조절당하고 있으며, 기후변화의 여파에 무심하고, 미래 세대에 남겨줄 유산에 둔감해지고 있다. 우리는 새로운 환경에 익숙해짐으로써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유전적으로 인간은 다양한 환경 조건에 대처하기 위해 적응해왔다. 추위에 대처하기 위해 지방층이 두터워졌고, 더위에 대처하기 위해 땀을 흘리게 되었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기후변화의 효과에 무뎌짐으로써 기후변화에 심리적으로 적응하고 있는 것일까? 기후변화의 원인을 직시하고 필요하다고 여기는 해결책을 실행에 옮기기가 불편한 것일까? <“전등 스위치를 무릎 높이에 달자!”> - 잔 보그
  • 비경제적 손실에 대한 산출은 개인과 관련된 비교적 단순한 사건에서도 어렵기로 악명이 높다. 이러한 어려움을 기후변화에 따른 손실의 규모까지 확대하면, 극복할 수 없는 일인 듯 느껴지기 시작한다. 조국을 상실하는 아픔에 얼마를 보상해야 하는가? 창조주 나레아우의 신화와 같이, 그들의 조국과 관련된 과거의 이야기들을 잃는 것에는 얼마를 보상해야 할까? <누가 기후변화에 가장 큰 책임이 있는가?> - 앙드레 다오
  • 기후변화에 대한 법의 전반적 대응과 더불어 ‘은근한 폭력slow violence’도 문제다. 이 용어를 처음 쓴 사람은 영문학자이자 환경학자인 롭 닉슨이다. 그는 은근한 폭력을 보이지 않는 곳에서 서서히 발생하는 폭력으로, 시공간 전체로 분산되는 더딘 파괴의 폭력이자 일반적으로 전혀 폭력으로 보이지 않는 자연소모적인 폭력이라고 묘사했다. 타라와의 비극은 바닷속으로 서서히 침몰하는 것이 수천 년간 그곳에서 살아온 사회의 끔찍하고 돌이킬 수 없는 파괴라는 점을 깨닫지 못한다는 데 있다. 그리고 법이 은근한 폭력의 본질을 이해하게 될 때까지, 그들에게 책임을 물으려는 노력은 계속해서 수포로 돌아갈 것이다. <누가 기후변화에 가장 큰 책임이 있는가?> - 앙드레 다오
  • 우리는 독립 연구소에 경제성 분석을 의뢰했는데, 재생에너지의 원가가 빠르게 하락하는 추세이며 가까운 미래에 시장에서 석탄의 가격 효율을 추월할 예정이기 때문에 화력발전소가 비경제적이라는 취지의 보고서를 받아냈다. 화력발전소가 경제적으로 어리석은 선택이라는 사실을 입증한 것이다. <기업과 정부, 새로운 시스템이 필요하다> - 제임스 손턴
  • 중국은 변화에 굉장히 적극적인 상태다. 환경보호 측면에서 글로벌 리더가 되려 한다는 점에서 지금 중국은 굉장히 흥미로운 지점을 지나고 있다. 2018년과 2019년에만 각각 5만 건에 달하는 환경 소송이 진행됐고, 그중 약 70퍼센트는 환경법 준수를 강제할 의무가 없는 정부기관이 대상이었다. 중국의 법관들은 자국 내에서 환경과 관련된 법규가 생겨나고 정착할 수 있는 가장 빠르고 효율적인 길을 택했다. 이렇게 진행해야 지방정부 관료는 물론 기업 경영자들, 모든 국민이 환경법을 준수해야 한다는 사실을 이해할 테니까 말이다. (…) 법의 내용이 어떻든 일단 그것을 준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 일반적으로는 법 위반이 기소로 이어진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기업과 정부, 새로운 시스템이 필요하다> - 제임스 손턴
  • 현존하는 법을 완벽하게 시행해도 환경을 지킬 수 없다.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현행법의 약점을 보완한 ‘환경법 2.0’이다. (…_ 기업들은 환경법을 강화하는 순간 회사를 다른 곳으로 옮기겠다고 협박하고 있다. 정유회사와 가스회사들은 (…) 사회가 석유와 가스 사용을 줄일 만큼 똑똑해지자, 이제는 플라스틱 생산으로 눈을 돌리겠다는 것이다. (…) 모든 화력발전소 가동을 중단하더라도 플라스틱 생산라인이 커지면 각각의 플라스틱 공장은 거대한 화력발전소만큼의 오염물질을 배출하게 된다. 게다가 그들이 만들어내는 건 플라스틱이고, 그건 그 자체로 비극이다. <기업과 정부, 새로운 시스템이 필요하다> - 제임스 손턴
  • 현재 가장 큰 쟁점은 잘못된 방향에 초점이 맞춰진 대규모 산업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사실 그들이라고 처음부터 환경을 망치려고 애쓴 건 아니다. 일이 어느 정도 진행되고 나서야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아챘을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그들이 이미 너무 큰 힘을 갖고 있어서 들어내기가 아주 어렵게 되었다는 것이다. <기업과 정부, 새로운 시스템이 필요하다> - 제임스 손턴
  • 현존하는 기업들의 구조와 방향이 비극적인 결과를 야기하고 있다면, 어떻게 그들을 바꿀 수 있을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규칙의 변화를 통한 결과의 변화다. (…) 진짜 변화는 반드시 정부와 기업에서 나와야 한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정부의 책임이 가장 크다. 가장 많이 바뀌어야 할 대상은 기업이지만, 그들은 결코 스스로 움직이지 않을 것이다. 결국 정부가 구체적인 규정을 제시해줘야 한다. 대중들은 (…) 옳은 길을 추구하는 이에게 투표해야 한다. 시민들이 의견을 결집해서 한 목소리로 변화를 요구해야 한다. (…) 가정에서뿐만 아니라 정치적으로도 뭔가 할 수 있다는 사실은 사람들에게 큰 힘을 실어준다. 이런 사실을 인지하면 절망과 우울을 극복하고 우리 앞에 놓인 어려움을 이해할 수 있다. 문명이 직면한 어려움을 이해하고 그 앞에 마음을 열어도 불쾌한 감정은 어쩔 수 없다. <기업과 정부, 새로운 시스템이 필요하다> - 제임스 손턴
  • “곧 변화가 다가오리라는 것을 알고 있다. 새로운 규정을 위반했다고 당신들에게 고소를 당하지 않도록 신속하게 시스템을 전환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려 달라.” (…) 누구나 볼 수 있는 변화의 징후를 읽을 수 있을 정도로만 똑똑하다면, 우리가 도움을 줄 수 있다. <기업과 정부, 새로운 시스템이 필요하다> - 제임스 손턴
  • 어린이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들이 우리에게 뭐라고 말하고 있는가, 대답은 거기에 있다. <기업과 정부, 새로운 시스템이 필요하다> - 제임스 손턴
  • 지구상에 어떤 생명도 존재하지 않는다 해도, 여전히 지구는 우주를 비행하고 파도는 절벽에 끊임없이 부딪힐 것이며, 강은 흐르고 번개는 수평선을 가르듯 내리칠 거예요. 이 행성에는 소리와 색깔, 질서와 혼돈이 가득하겠죠. 그래도 지구를 누릴 생명체가 곁에 있으면 더 좋을 것 같아요. 그 신발을 신을 아기가 있다면 더 좋은 것처럼요. 하지만 누가 없더라도 신발이 그렇듯 지구도 보기 나쁘지 않을 거예요. 그리고 신발과 지구 둘 다 생명이라는 아주 특별한 것이 사라졌다는 사실을 상기시키는 역할도 하게 되겠죠. <기후변화, 그냥 막으면 되잖아요?> - 매슈 비어드
  • 수용의 자세에도 품위가 있겠지만, 대단히 곤란한 역경에 직면했을 때까지도 저항의 자세로 계속하여 분투하고 울부짖는 것 역시도 품위 있는 일일 것입니다. <왜 개인만 행동을 바꿔야 하는 거죠?> - 매슈 비어드
  • 인간이 초래한 X-리스크 가운데 하나는 기후변화이고, 또 하나는 인간이 만든 로봇이 인간을 위협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쯤 되면, 우리가 인류의 종말을 늦추기는 커녕 도리어 앞당기는 것이 아닌가 싶다. <실존적 위험과="" 실존주의=""> - 마리아나 알렉산드리
  • 인류는 스스로 종말을 설계해왔고, 누군가가 ‘지구온난화’라는 이름을 붙이기 전까지는 수십년 동안 그것을 진보라고 불렀다. <실존적 위험과="" 실존주의=""> - 마리아나 알렉산드리
  • 교만이란 그것이 죄악시된 시대부터 불명예 꼬리표를 달았찌만, 인간이 스스로를 망치려고 굳이 나섰다가 결국 마지막 순간에 다급하게 성모송을 토해내는 이유를 그럴듯하게 포장하는 이름표이기도 하다. 호기심이라고 부르는 것이 더 낫겠다. <실존적 위험과="" 실존주의=""> - 마리아나 알렉산드리
  • 트랜스휴머니스트의 논리대로라면 우리는 죽음을 물리칠 때 죽음을, 그리고 고통과 한계를 더는 두려워하지 않게 된다. 하지만 죽음과 고통과 한계는 인간의 실존을 가장 확실하게 보여주는 세 가지 특성이다. 두려움, 불안, 염려, 슬픔, 고독, 절망, 비탄은 말할 것도 없다. 이런 ‘약점들’을 뿌리 뽑으려는 시도는, 마치 ‘해로운 남성성toxic masculinity’이 보안 허가를 받고 주차 공간을 얻었다는 소리로 들린다. 딱하고 꼴사나운 실존적 특징이 사라진다면, 인간에게 무엇이 남겠는가? <실존적 위험과="" 실존주의=""> - 마리아나 알렉산드리

Comments